
220903
가상자산 업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고대와 중세에는 사회 극소수 지배 계층이 ‘글 읽기’를 독점해 지식을 장악했고 정보의 혜택을 누릴 수 없던 다수의 피지배 계층 위에 군림하는 지배 구조가 동서양에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13세기 유럽에서 구텐베르크의 인쇄 기술과 함께 싼 값에 책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지식 보편화의 물꼬가 열립니다. 책의 보급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계몽된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미국 독립 전쟁, 프랑스 혁명 등을 거치며 인권의 보편성 개념이 형성되고 전 세계에 전파됩니다.
초기에는 주로 정치권력에 맞서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는 1968년의 세계적인 68혁명의 성과로 여성과 아이, 소수자, 이주민 등도 인권의 주체로 부각됐습니다. 단지 법 앞의 평등이나 기회의 평등이 아닌 전면적인 사회보장제도 확충으로 상당한 수준의 결과적 대우의 평등이 실현되기 시작했습니다.
인권 보장이 잘 된 선진국을 보면 사회 공공재의 형태로 제공됨을 알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물, 전력, 통신, 도로 등 물리적인 시설부터 넓게는 교육, 의료 제도, 연금 제도 등 사회 제도를 포함합니다.
인터넷도 그러한 존재입니다. 인터넷은 특정 소수에 국한하지 않고 마찰과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정보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공공재입니다. 한 가지 큰 차이는 다른 공공재는 각 국가의 정부가 제공하지만 인터넷은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조금씩 기여해 작동하는 운영 주체가 분산된 공공재라는 것입니다.
가상자산 업계가 존재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이러한 인터넷이라는 공공재가 제공해주는 서비스의 영역을 정보 전달에만 한정하지 않고 ‘가치’의 전달로 넓혀, 나아가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디파이(DeFi)가 좋은 예입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은행 계좌가 없는 인구 수는 17억 명, 전 세계 성인 인구 중 50%를 차지합니다. 은행 계좌가 없는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경제 활동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전 세계 경제 가치 창출 관점에서도 엄청난 리소스 손실이며 이들이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디파이는 공간의 제한이나 정치의 차별을 받지 않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공공재를 지금의 금융 시스템 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극히 일부만 사용하고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인 것입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음에도 전 세계 유능한 젊은이들이 이 업계에 몰리는 것은 금전적인 이유만은 아닐 것입니다. 업계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강세장의 끝과 함께 떠나버리는 이들은 차치하더라도 혹독한 크립토 윈터의 불확실성을 견디며 다음 단계의 도약을 추구하는 Builder들에게는 ‘대박'의 꿈 외에도 더 가치 있는 다른 모티브가 존재합니다. 어떤 젊은이들에게는 그것이 인권 확장일 수 있습니다.